꽃 케이크

     

     

    우리 집은 일년에 생일 파티를 약 삼십 번 정도 한다.

    식구가 단 세 사람 밖에 안 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지훈이의 못말리는 취미 중의 하나가 생일 파티이기 때문이다.

    지훈이가 생일 파티를 끔찍이 좋아하는 이유는 오로지 맛있는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아빠, 케이크 사 와.”

    이 말은 녀석이 나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녀석은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밑도 끝도 없이 이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거절 할 수가 없다. 어쩌다 내가 일이 늦어져 밤 늦게 들어가게 되면 녀석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내가 들어오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곤 한다.

    하지만 녀석이 잠들기 전이라면, 케이크를 사지 않고서는 녀석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다.

    간혹 약속했다가 깜빡 잊어버렸거나 너무 늦어서 동네 제과점이 문을 닫아 버려 빈 손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녀석이 자지 않고 ‘아빠’를 외치며 뛰어나오면 그 미안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다행히 너무 늦지 않았으면 그 길로 녀석과 케이크를 사러 함께

    나가기라도 하련만 그렇지도 못할 경우엔 내일은 꼭 사오겠노라고 단단히 약속을 할 수밖에 없다.

    케이크를 사 온 날은 세 식구가 모여 앉자 생일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후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다음 꼭 녀석의 입으로

    촛불을 꺼야 한다.

    그러면 우리 부부는 요란한 박수로 생일 아닌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 것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로 시작되는 생일 축하 노래도 처음에는 한 번으로 끝났지만

    언제부턴가는 ‘Happy birthday to you’ 로 시작되는 영어로 된 생일 축하 노래를 2절 까지

    불러야 한다. 생일 맞은 사람이 없는 생일 파티의 주인공은 당연히 지훈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일 파티에서 ‘사랑하는 지훈이의~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랫말이

    거의 고정되어 있다시피 하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사랑하는 예수님의~ 생일 축하합니다~.’로 바뀌게 된다.

    그 분위기가 11월에서부터 1월까지 가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 집에서는 예수님 생일도

    대여섯 번은 되는 셈이다.

    녀석은 케이크에다 초를 꽂고 가족이 둘러앉아 생일 파티를 하는 그 분위기가 그렇게

    좋은가 보다. 생일 파티에 사람이 많을수록 지훈이는 더욱 신이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이라도 되면 일가 친척이 모이므로 그날은 지훈이에게 최고의 날이다.

    온 일가 친척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녀석은 자기가 무슨 황제라도 된 양 생일

    파티의 주역으로 행세한다.

    그렇게 사람이 모여서 어울리는 자리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히 심심하면 나에게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를 수밖에. 하지만 일년에 몇 번도 아니고 매번 그 비싼 케이크를 사오라니 난감하다.

    그냥 빵을 사면 만 원어치만 사도 녀석이 이삼 일을 두고 먹을 수 있을 텐데 케이크는 최소한

    이 만원 이상을 줘야하니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케이크와 맛이 비슷한 카스텔라 빵을

    사 간 적도 있었다.

    케이크를 사 오기로 한 날은 늘 그렇듯이 그날도 문 앞까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 지훈이가

    내가 사 온 빵을 껴안고 좋아했다.

    이윽고 포장을 풀어 본 녀석은 ‘이거 케이크 아니잖아.’ 하며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훈아 이것도 케이크야, 먹어봐. 얼마나 맛있는데.”

    아내와 나는 감언이설로 그 놈을 설득하려 했지만 녀석은 ‘초도 없잖아. 초도 없는데 어떻게

    후 불어.’ 하며 전혀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 후로 녀석이 나에게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르는 말투가 달라졌다.

    “아빠, 꽃 케이크 사와!”

    꽃 케이크란 빵이 아닌 진짜 케이크를 말하는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녀석의 눈에 케이크와 빵은 꽃처럼 화려한 장식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별되는 모양이다.

    거기에 초까지 꽂아 놓으면 그야말로 활짝 핀 꽃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어느 날은 생일 파티를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또 케이크 생각이 났는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내게 미적거리며 다가왔다.

    “아빠, 우리 케이크 사 먹자.”

    “안돼, 너 엊그제 생일 파티 했잖아. 한참 있어야 돼.”

    내가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녀석은 애틋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떼를 썼다.

    “두 밤만 자면 할아버지 생신이니까 그때까지만 참았다가 케이크 먹자. 아빠가 커다란 케이크

    사 가지고 지훈이랑 할아버지 집에 갈꺼야.”

    나는 아버님 생신이 내일 모레인 것을 기억하고 잘 됐다 싶어 녀석에게 핑계를 댔다.

    그러자 녀석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그럴듯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케이크 사 먹고 그땐 노래만 부르면 되잖아. 내가 축가 불러줄께.”

    녀석의 황당한 어거지에 웃음밖에 안나왔다.

    그러다 아내가 녀석이 좋아하는 햄이랑 치즈 등 저녁 찬 거리를 잔뜩 사오자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케이크에 대한 일을 금방 잊어버렸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은 우리 식구는 늘 그렇듯이 거실에 모여 앉았다.

    녀석은 내 앞에서 엄마와 공부한 한글을 신나게 소리 내어 읽으며 자랑하더니 어느새 거실

    바닥에 장난감 블록을 다 쏟아 놓고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블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놀던 녀석이 그 날은 아내가 억지로 재우려 하지 않아도 일찍 잠자리에 드는게 아닌가.

    서재에서 일을 하던 나는 잠자리에 드는 지훈이의 얼굴을 보려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내가 녀석에게 입을 맞추며 ‘지훈아 잘자’ 하고 말하자 그놈은 ‘아빠, 안녕.’하고 눈을 감는다

    싶더니 돌아서려는 나를 불렀다.

    “왜, 지훈이 쉬야 하고 싶어?”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빠, 두 밤만 자면 꽃 케이크 먹는거야?”

    나는 웃음이 났다. 얼마나 케이크가 먹고 싶었으면 어린 것이 스스로 잠을 청하려 이렇게 애를 쓸까.

    “그래 두 밤만 자면 할아버지 집에 케이크 먹으러 가는거야.”

    “아빠 차 타고?”

    “그래, 아빠 차 타고 엄마랑 아빠랑 지훈이랑 다 갈 거야 그러니까 빨리 자, 오늘 자면

    한 밤만 남으니까.”

    그리고는 아내가 지훈이를 껴안자 녀석은 빨리 잠을 청하려는 듯 엄마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 녀석은 분명 꽃 케이크 꿈을 꾸었을 것이다.

    녀석의 포동포동한 몸매에 날개가 달려, 귀여운 아기 나비의 모습으로 커다란 케이크

    위를 날아다니는 꿈이었을지 모른다.

    꿈속의 화면이 점점 확대되면서 그 커다란 꽃 케이크는 수백, 수천개에 이르고 녀석은

    신이 나서 이 케이크 저 케이크로 옮겨 다니기에 바쁘다.

    하얀 케이크, 분홍 케이크, 노란케이크, 초록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화려하고 맛나게 생긴 케이크들로 가득 찬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게 생긴 커다란 꽃 케이크의 문이 열리더니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고모 다 나온다.

    다른 케이크에서도 문이 열리더니 민수, 종민이, 순진이, 민성이를 비롯한 친구들이랑

    그 엄마, 아빠들이 모여든다.

    돈까스 집 아저씨, 자장면 집 아저씨, 김밥집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계란 아줌마까지

    다 나온다.

    누군가가 케이크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모든 케이크에 불이 환하게 밝혀지며

    온 세상이 더 한층 밝아진다

    지훈이가 태어난지 3년이 다 되도록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녀석은 손가락으로 푹 찍어서 맛을 본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게 너무나 맛있다. 순간, 엄마, 아빠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신나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지훈이의~

    생일 축~하 합니다.~”

    지훈이는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녀석은 깊은 잠에 빠진 채 빙긋빙긋 웃었다. 입을 쩝쩝거리기도 하고,

    까르륵대며 웃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꿈꾸나 봐요. 맛있는 걸 먹나 보죠?”

    “응, 아마 꽃 케이크일 거야.”

    자면서도 흐믓한 미소를 짓는 녀석의 얼굴은 활짝 핀 채송화 같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