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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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느즈막히 회사로 출근한 경식은 케쥬얼한 옷이 더없이 편했다. 여느 때 같으면 텔레비전 앞에서 종일토록 누워만 있을 게 뻔한데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일요일인 오늘은 거리만 한산한 게 아니라 사무실도 텅 비어있어 적막하기까지 했다. 내일까지 올려야 할 긴박한 서류가 있어 사무실에 나오긴 했지만 경식은 모텔 방에서 그 사내와 뒤엉켜 있는 미영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좀처럼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말이면 결코 자신을 만나주지 않던 미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모텔 방에서 그 사내,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사내와 뒹굴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창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지난 몇 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 머릿속에 천사로 각인되었던 미영을 다시 재입력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하니?

CF에 나왔던 말이던가?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 해당사항이 되지 않는 말이란 걸 경식은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사랑 따윈 없었으니까.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옹녀와, 신분 상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영은 빼다 박은 것처럼 닮은 꼴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요란하게 들렸다. 경식은 옥상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경식은 두 눈을 의심하였다. 까만 개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고 곰보가 누렁이의 주둥이에 가죽 마스크를 씌운 채 발목을 바닥에다 가죽 끈으로 꽁꽁 붙들어 매고 있었다. 누렁이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어댔다. 옹녀는 한쪽 구석에서 그 처절한 광경을 노려보며 미친 듯이 짖어댔다.

다 묶었다 싶자 곰보는 기다릴 것도 없이 옆에 세워 둔 커다란 몽둥이로 누렁이의 머리를 하고 내리쳤다.

누렁이의 눈이 온통 흰자위로 뒤덮이며 발악을 해댔다. 가죽 마스크가 씌워진 입 주변으로 하얀 거품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누렁이의 바둥거림도 잠시, 곰보가 몽둥이로 누렁이의 머리를 두 번, 세 번 내리치자 누렁이는 쭉 뻗고 말았다. 구석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옹녀가 갑자기 짖는 것을 멈췄다. 극도로 공포에 질려 더 이상 짖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것이었다.

저럴 수가…… 저럴 수가……

그 섬뜻한 기운이 시간을 일시에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경식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경악할 광경은 계속 이어졌다.

누렁이의 발에 동여맸던 족쇄를 푼 곰보는 산소통에 연결된 용접기를 들고 불을 당겼다. 용접기에서 솟구치는 파란 불…… 곰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누렁이의 털을 그슬리기 시작했다. 경식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까지 누렁이는 죽지 않고 다리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저건 인간의 짓이 아니야. 인간의 짓이……’

경식은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누렁이를 그슬려 올라오는 검은 연기가 경식의 눈앞에 피어 올랐다. 이윽고 역겨운 노랑내가 경식의 코를 찔렀다. 경식은 얼른 창문을 닫았다. 속에서 스물스물 구역질이 올라왔다. 누렁이를 잡던 곰보의 잔인한 얼굴이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허이구-, 이제 옹녀 하나만 남았네 그려.

출근 하자마자 최대리의 억센 남도 사투리 억양이 경식의 귀에 꽂혔다.

지 서방들 다 죽고, 참 옹녀 팔자 기구하데이-.

아마 그 개도 오래 가진 못할 겁니다. 지금이 복철 아닙니까.

아싸, 오늘 복날 기념 회식으로 영양탕 어때요?

시집도 안 간 처녀가 그렇게 개고기를 밝힌다냐? 누군지 참 큰일 나것네.

병철과 미스 리, 최대리가 한 마디씩 해대자 홍보실은 실없는 웃음과 잡담이 이어졌다.

옥상의 풍경은 한 바탕 폭격을 맞고 난 후의 전쟁터 같았다. 누렁이를 잡을 때 털을 태웠던 자국이 시멘트 바닥에 꺼멓게 묻어있었고, 개밥 그릇에는 잔밥이 한 가득 담겨진 채 그대로였다. 네 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잔밥그릇을 비우던 일이 언제인가 싶었다.

옹녀는 한쪽 구석에 납작 엎드려 죽은 듯이 움직일 줄 몰랐다. 옹녀의 눈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좌절과 슬픔,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남편들이 학살되어 버린 옹녀의 심정을 경식은 헤아릴 수 있었다. 슬픈 옹녀의 눈빛에서 경식은 이제 더 이상 미영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

옹녀는 애초부터 미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작 경식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아……’

경식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더할 나위 없는 패배의식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졌다. 학창시절부터 계속된 긴장성 스트레스와 시도 때도 없이 도지는 말더듬증에서부터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후배 병철과 미스 리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추락하는 피해의식이 경식을 고통의 수렁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으메- 저 옹녀 배 좀 보라지, 배가 불룩허니 저거 새끼 밴 거 아녀?.

경식은 경악하며 옹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옹녀는 전에 비해 얼굴은 초췌해졌는데 아랫배만 불룩해져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은 이제 시작일뿐이었다.

정말이네, 참 불쌍하구만 불쌍해. 어쨌든 새끼 날 동안 목숨은 부지하겠네요.

그건 또 무신 소리여?

보신탕감이 늘어났는데 주인이 저 개를 잡겠어요?

-, 듣고 보니 그러네. 참말로 불쌍해서 어쩐다냐.

경식의 가슴 한 켠에서 외마디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안돼……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조용한 카페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경식은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의지한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설레임도 일지 않았다. 누군가를 증오하기 전에 자신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 경식은 전과 달리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게 되는 자신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경식 씨

경식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미영이 자신의 앞에 앉을 때까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 왔어. 뭐하고 있는 거야?

미영이 조금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경식을 흘겼다.

응 왔어?

경식은 미영을 보았다. 오늘 따라 그녀의 새빨간 입술이 춤을 추고 있었다. 긴 손톱에 칠해져 있는 까만 매니큐어, 그 안에 찍혀져 있는 반짝이 별들이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 주에는 왜 한번도 연락을 안 했어? 시골이라도 내려갔다 온 거야?

경식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이야? 그거 어떻게 됐어?

그거라니?

미영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땅 말이야, .

으응…… 잘 됐어.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노인네가 허락했어? 자세히 얘기해 봐.

미영은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경식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경식은 강남의 사십 평 대 아파트를 결혼조건으로 내세웠던 미영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철저히 그녀를 속이고 싶었다. 그녀가 삼 년 넘게 자신을 속여온 것에 대한 복수의 십 분의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날 저녁, 경식은 미영과 사귄 이래 두 번째 키스를 할 수 있었다. 아니, 미영이 선심 쓰듯 경식에게 키스를 해댔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것으로 그녀는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어 간다고 확신했다. 경식은 속에서 스물스물 노랑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경식은 언제 그녀에게 결별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왠지 완전한 이별을 위해선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옹녀의 목숨은 질기고도 질겼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꼼짝없이 갇힌 4층 옥상에서 홀로 죽음보다 슬픈 출산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네 마리의 귀여운 새끼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모습을 옹녀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새끼들의 털이 하얀 색과 까만 색이 섞인 걸로 보아 새끼들의 아비가 까만 개 아니면 점박이임이 틀림없지만 아무래도 까만 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옹녀는 하루종일 자신의 새끼들을 혓바닥으로 핥아주는 게 일이었다. 자기 새끼들의 운명을 알기나 하듯이 하염없이 혓바닥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그러나 옹녀가 귀여운 새끼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잠시, 출산한 지 한 달도 못되어 새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부터 경식은 움직이고 있는 옹녀를 본 적이 없었다. 새끼들의 죽음은 남편들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옹녀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축 늘어져 있는 옹녀. 아무런 희망도, 저항할 의지도 없는 자신의 모습 같아서 경식은 괴로웠다.

저 옹녀 좀 보래이. 꼼짝도 않고 처져 있는 거이 참말로 못 봐 블것네. 지가 난 새끼들을 젖도 떼기 전에 다 뺏겼으니 아무리 개새끼라지만 너무 허는 거 아녀?

어차피 죽을 목숨, 하루라도 빨리 정 떼면 좋은 거죠 뭐. 그나저나 이제 새끼도 다 낳았으니 옹녀 잡을 날도 멀지 않았네요.

몽둥이를 들고 웃고 있는 곰보의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 몇 번이나 꿈 속에서 곰보와 맞닥뜨렸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산소 용접기를 경식이 얼굴에 들이대고 파란 불을 뿜으며 다가서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경식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깨어나곤 하였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개집 안에서 옹녀는 얼굴을 다리에 파묻고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언제까지나 바라만 보고 있었다. 새끼가 사라지고 난 뒤 옹녀가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경식은 옹녀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무심코 옥상을 내려다 보던 경식은 불현듯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였다.

옹녀가 비를 맞으며 비실비실 걸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경식은 바짝 긴장한 채 옹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분명 옹녀의 행동은 전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옹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경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옹녀는 옥상 귀퉁이에 있는 나무더미를 밟고 올라서고 있었다. 힘이 없는지 올라서다 미끄러져 흙탕물에 곤두박질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옹녀는 나무더미 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옹녀는 나무더미에서 그리 높지 않은 옥상의 담으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경식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폭이 채 15센티도 안 될 것 같은 담벽 위에 올라선 옹녀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옹녀는 옥상의 담 끝에서 마치 뛰어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식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옹녀는 4층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뛰어내릴 듯 앞으로 주춤주춤거렸다.

안돼…… 제발……”

경식의 등에서 식은 땀이 주르르 흘렀다.

옹녀는 먼저 간 자식들과 남편들을 못 잊어 그들 곁으로 가고 싶었을까……

옹녀는 아래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움츠렸다 빼더니 힘차게 뒷발을 차며 뛰어내렸다.

안돼-

경식이 갑자기 칼날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세차게 내리쳤다.

조용하던 사무실의 정적이 한 순간에 깨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경식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 했다.

경식, 왜 그래?

최대리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경식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5층에서 1층까지의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온 경식은 길가로 뛰쳐나갔다.

어느새 가을 비는 장대비가 되어 있었다. 경식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미친 듯이 옹녀를 찾았다.

순간, 경식은 저만치서 옹녀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경식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옹녀는 온통 상할대로 상한 낡은 수세미 같은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비실비실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힘겹게

옹녀는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경식은 옹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폭우가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경식은 옹녀에게서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가 곧 죽을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옹녀에게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경식은 알 수 있었다. 옹녀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과 같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조차도 뛰어넘기를 선택한 위대한 개였다.

그래, 너는 해낸 거야. 그건 죽음보다 훨씬 값진 탈출이었어.

경식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간혹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끗흘끗 경식을 쳐다보았다.

경식은 갑자기 솟구치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으악-하고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경식의 절규가 빗속에 메아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옹녀가 보여준 위대한 용기가 경식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경식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경식의 하얀 와이셔츠에 그의 눈물과 뒤범벅이 된 빗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흐릿한 빗속에서 혜련이 우산을 받쳐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혜련이 천천히 경식에게 다가왔다.

우산 쓰세요. 김 선배님……”

됐습니다. 이미 젖었는걸요.

우산을 받쳐 든 혜련과 경식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왠지 경식은 쓴 웃음이 나왔다. 혜련도 그런 경식을 보며 웃었다.

장대비는 훨씬 잦아들고 있었다.

내일은 해가 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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